— “아이 만날 때 다른 여성과 함께 오지 마세요” 조건을 붙인 이행명령, 대법원이 제동을 걸다 (대법원 2026. 8. 24.자 2026으552 결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고영남
이혼을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이혼 판결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부모가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날짜와 방법, 이른바 ‘면접교섭’을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적어 둡니다. 한 달에 두 번 주말 1박 2일, 여름·겨울방학에 2박 3일, 명절에 1박 2일. 이 짧은 문장들이 어떤 부모에게는 한 달을 버티게 하는 약속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약속을 지키라고 법원에 도움을 청했더니, 법원이 오히려 판결에 없던 새로운 조건을 붙여버렸다면? 오늘 소개할 대법원 결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분명하게 그은 사례입니다.
1. 무슨 일이 있었나 — 사건의 전개
A씨와 B씨는 어린 자녀를 두고 혼인생활을 하다가 2024년 6월 이혼 판결이 확정되면서 갈라섰습니다. 법원은 B씨를 아이의 친권자이자 양육자로 정하는 한편, A씨가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면접교섭 일정을 판결문에 상세히 정해 두었습니다.
▸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6시까지 (1박 2일)
▸ 여름방학·겨울방학 중 협의하여 정한 각 2박 3일
▸ 설날·추석 연휴 중 협의하여 정한 각 1박 2일
그런데 A씨의 주장에 따르면, B씨는 판결이 정한 1박 2일 대신 매월 두 번 ‘당일 만남’만 허용했다고 합니다. 아이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판결문의 약속이 현실에서는 반나절 만남으로 줄어든 셈입니다. 결국 A씨는 2024년 10월 가정법원에 “판결대로 면접교섭을 허용하라고 명령해 달라”는 이행명령을 신청했습니다.
가정법원은 두 사람을 심문한 뒤 2026년 4월 이행명령을 내렸습니다. 일정과 방법은 원래 판결과 똑같이 정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준수사항에 판결문 어디에도 없던 한 줄이 새로 들어간 것입니다.
“A씨가 아이를 면접교섭할 때, 아이의 혈족이 아닌 여성이 동석하지 않도록 한다.”
쉽게 말해 ‘아이를 만날 때 새 연인 등 다른 여성과 함께 오지 말라’는 취지의 조건입니다. 약속을 지켜달라고 법원 문을 두드린 A씨 입장에서는, 오히려 원래 판결에는 없던 족쇄가 하나 더 생긴 결과가 됐습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특별항고를 제기했습니다.

[그림 1] 사건의 흐름 한눈에 보기
2. 쟁점 — 이행명령을 하면서 판결에 없던 조건을 추가해도 되는가
이 사건의 쟁점은 단순하지만 날카롭습니다. 가정법원이 이행명령을 내리면서, 원래 판결에는 없던 새로운 조건을 붙이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여성 동석 금지’라는 조건이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그런 조건을 ‘이행명령’이라는 절차에서 붙일 수 있는지가 먼저 문제 됩니다.
3. 잠깐, 이행명령이란 무엇인가요?
이행명령(가사소송법 제64조)은 이혼 판결 등으로 확정된 의무 — 양육비 지급, 유아 인도, 면접교섭 허용 등 — 를 정당한 이유 없이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가정법원이 “정해진 기간 안에 의무를 이행하라”고 명령하는 제도입니다. 이 명령마저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고, 양육비나 유아 인도 등 일정한 경우에는 감치(법원이 사람을 일정 기간 가두는 것)까지 갈 수 있습니다. 판결문을 받고도 버티는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가사사건 특유의 강력한 이행 확보 수단입니다.
핵심은 이행명령의 ‘성격’입니다. 대법원은 이행명령이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내는 재판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권리를 실현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민사 강제집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비유하자면 이행명령은 심판이 아니라 집행관에 가깝습니다. 경기 규칙(판결)을 새로 쓰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규칙대로 뛰라고 호루라기를 부는 자리인 것입니다.
4. 대법원의 논리 — 세 단계로 읽기
① 이행명령은 ‘실현’의 절차다. 이행명령은 확정된 의무를 지키라고 촉구하는 수단일 뿐이므로, 이행명령으로 판결이 정한 의무의 내용을 바꾸거나 의무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만들어 붙일 수는 없습니다. 아직 이행되지 않은 의무의 ‘일부’만 골라 이행을 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행명령이라는 형식을 빌려 판결로 확정된 권리를 사실상 줄이거나 바꾸는 처분은 할 수 없습니다.
② 면접교섭 내용을 바꾸는 길은 따로 있다. 아이의 복리를 위해 면접교섭을 제한·배제·변경할 필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민법 제837조의2 제3항이 바로 그 근거입니다. 다만 이는 별도의 정식 재판(가사비송 심판) 절차로 다뤄야 합니다. 이 절차에서는 원칙적으로 조정을 먼저 거쳐야 하고, 당사자를 반드시 심문해야 하는 등 신중한 절차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절차를 거쳐야만 판결로 확정된 면접교섭의 내용을 바꿀 수 있습니다.
③ 이 사건 추가 조건은 사실상 ‘면접교섭권 제한’이다. 원래 판결은 동석자에 관해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행명령에 ‘혈족 아닌 여성 동석 금지’가 추가되면서, A씨가 판결대로라면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면접교섭이 제한·배제되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이는 정식 절차를 거쳐야 할 면접교섭권의 제한·변경 처분을 이행명령의 옷을 입혀 해버린 것과 같으므로, 이행명령의 범위를 벗어나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나아가 이러한 원심결정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절차를 건너뛴 권리 제한은 그 내용의 당부를 떠나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절차적 정의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림 2] 이행명령과 면접교섭 변경 심판의 차이
5. 이 결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 면접교섭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 이행명령은 ‘판결 그대로’를 관철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상대방이 판결이 정한 일정·방법을 지키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이 결정 덕분에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새 조건이 붙을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 면접교섭 조건을 바꾸고 싶다면 — 동석자를 제한하고 싶거나, 일정·방법이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이행명령 절차에서 다툴 것이 아니라 면접교섭의 제한·변경을 구하는 별도의 심판을 청구해야 합니다. 조정과 심문을 거치는 정식 절차인 만큼, 주장과 자료를 충실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법원이 내린 명령이라도 다툴 수 있습니다 — 이 사건처럼 이행명령에 판결에 없던 내용이 들어가 있다면, 특별항고 등 불복 수단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명령문을 받았을 때 원래 판결문과 꼼꼼히 대조해 보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이혼 후의 면접교섭은 부모의 권리이기 이전에 아이가 양쪽 부모의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 내용을 정하고 바꾸는 일은 그만큼 신중한 절차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번 대법원 결정이 담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면접교섭 · 이행명령 · 가사사건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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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대법원 2026. 8. 24.자 2026으552 결정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으로,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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